우가 울에게 / 김혜순
11월에는 잠이 오지 않았고
11월에는 밤이면 천장의 별이 모두 켜졌고
11월에는 가슴이 환해 눈이 감아지지 않았고
찬 우물이 머리보다 높아 걸을 땐 쏟아질 듯 위태로웠고
우와 울은 주먹 쥐고 푸른 바께쓰 속에 누워 있었네
충치 앓는 피아노처럼 둘이 앙다물고 있었네
11월에는 밤이면 천장의 별이 모두 켜졌고
11월에는 가슴이 환해 눈이 감아지지 않았고
찬 우물이 머리보다 높아 걸을 땐 쏟아질 듯 위태로웠고
우와 울은 주먹 쥐고 푸른 바께쓰 속에 누워 있었네
충치 앓는 피아노처럼 둘이 앙다물고 있었네
우는 구름을 덮고, 울은 그림자를 덮었네
우는 바람에 시달리고, 울은 바다에 매달렸네
우는 살 냄새다 하고, 울은 물 냄새다 했네
우는 햇빛을 싫어하고, 울은 발이 찼네
우는 먹지 않고, 울은 마시지 않았네
밥을 먹는데도 내가 없고, 물을 마시는데도 내가 없었네
우는 산산이고, 울은 조각이고
우는 풍비이고, 울은 박산이고
내 살갗은 겨우 맞춰놓은 직소퍼즐처럼 금이 갔네
우는 옛날에 하고, 울은 간날에 울었네
우는 비누를 먹고, 울은 빨래가 되었네
나는 젖은 빨래 목도리를 토성처럼 목에 둘렀네
우는 얼음의 혀를 가졌고, 울은 얼음의 눈알을 가졌네
나는 얼음을 져 나르느라 어깨가 아팠네
우는 바람에 시달리고, 울은 바다에 매달렸네
우는 살 냄새다 하고, 울은 물 냄새다 했네
우는 햇빛을 싫어하고, 울은 발이 찼네
우는 먹지 않고, 울은 마시지 않았네
밥을 먹는데도 내가 없고, 물을 마시는데도 내가 없었네
우는 산산이고, 울은 조각이고
우는 풍비이고, 울은 박산이고
내 살갗은 겨우 맞춰놓은 직소퍼즐처럼 금이 갔네
우는 옛날에 하고, 울은 간날에 울었네
우는 비누를 먹고, 울은 빨래가 되었네
나는 젖은 빨래 목도리를 토성처럼 목에 둘렀네
우는 얼음의 혀를 가졌고, 울은 얼음의 눈알을 가졌네
나는 얼음을 져 나르느라 어깨가 아팠네
왼쪽 어깨에 우를 오른쪽 어깨에 울을 물지게 가득
짊어진 여자가 나타났네
티베트 깡통 돌리는 할머니 염불처럼 천당 지옥
천당 지옥 계속 같은 말만 우물거리더니
우와 울을 한 바께쓰 내 살갗 밑에 부었네 갔네
짊어진 여자가 나타났네
티베트 깡통 돌리는 할머니 염불처럼 천당 지옥
천당 지옥 계속 같은 말만 우물거리더니
우와 울을 한 바께쓰 내 살갗 밑에 부었네 갔네
김수영은 김수영영영이고
김춘수는 김춘수수수이고
김종삼은 김종삼삼삼이고
왼발 다음엔 오른발
1 다음엔 2, 2 다음엔 3이고
우 다음엔 울이라고
세상에 가득 찬 수학이 출몰하는 밤
존경하는 시인님들은 아직 죽음의 탯줄에 매달려 계시고
김춘수는 김춘수수수이고
김종삼은 김종삼삼삼이고
왼발 다음엔 오른발
1 다음엔 2, 2 다음엔 3이고
우 다음엔 울이라고
세상에 가득 찬 수학이 출몰하는 밤
존경하는 시인님들은 아직 죽음의 탯줄에 매달려 계시고
콜리가 멜랑에게
12월이 11월에게
12월이 11월에게
우는 빗줄기를 빗질하고, 울은 빗줄기를 빗질하고
우는 하얀색 운동화를 왼쪽에 신고
울은 하얀색 운동화를 오른쪽에 신고
나는 발잔등에 줄 끊어진 흰 새를 두 마리 덮고
우는 하얀색 운동화를 왼쪽에 신고
울은 하얀색 운동화를 오른쪽에 신고
나는 발잔등에 줄 끊어진 흰 새를 두 마리 덮고
그렇게 오도 가도 못했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의 전설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
칼날 같은 말로 여러 학우의 눈물을 쏙 뺀 스승
김혜순 교수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
칼날 같은 말로 여러 학우의 눈물을 쏙 뺀 스승
김혜순 교수
*늘어진 마음을 묶기 위해 긴장의 대상을 골랐다.
김 교수는 항상 어두운색의 옷을 입고 검은 베레모를 즐겨 썼다. 검은 뿔떼 속 찢어진 그것은 저승사자와도 같았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착시현상이다. 껍데기에 불과한 옷이 사람을 대신하여 삶에 비치기 때문. 그말은 당시의 내게 큰 공감을 끌어내었다.
내가 그녀를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공모전에서 모두 상을 받아 더는 받을 상도 없는 경력 때문인가. 글에 답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모두 좋은 글에 대해 반응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이 우습지만 일 년 일 년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시가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쉽게 이해된다.
그녀의 남편인 이강백 교수의 수업도 자주 들었다. 사실 수업도 수업이지만 그의 성격이 궁금했다. 시인 김혜순의 글에 영향을 준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고 싶었다. 그건 하나의 결심을 가져다주었다. 글 쓰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않겠노라고. 이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생략하는 것이 좋겠다.
그녀의 언어를 어렵다고 생각했다. 읽어도 읽어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심사위원들에게도 나온 말이다. 당시, 그 기사를 읽고 위안을 삼았던 것이 기억난다. 시인에게 가장 화가 나는 말은 '자위하냐.'일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쓴 언어를 읽고 겉치레로 생각하는 이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속으로 비웃고 만다. '보이는 만큼 보는 것이지'라며. 그녀는 시를 긴장해서 쓰라고 말했다. 쉽게 쓰는 언어는 시가 사물의 정수를 포착하지 못하는 대신 말이 풀어지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내가 그녀의 시를 읽고 머리가 아팠던 것 처럼 누군가도 내 글을 읽고 뇌에 고통을 주었으면 좋겠다.
30분이 멀다고 담배를 피우던 여자. 시인은 단지 고통을 같이 겪는 동병상련 同病相憐의 대상일 뿐이라고 말하던 여자. 등단하고 나서도 재등단을 서슴지 않고 해치웠던 여자. 여성의 언어는 본래 위반의 언어이니 세상 모든 것들을 다시 잉태하고, 분만하라 가르치던 여자.
오랜만에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보면서 결심한다.
"김혜순 공화국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긴장과 배움을 놓지 말아야겠다."
"김혜순 공화국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긴장과 배움을 놓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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